한낮이 오고 또 밤이 왔다. 하루는 한 계절과 같았다. 그는 파리에 다녀온 것일까 아니면 그냥 그의 계획일 뿐이었을까? 다음 달에 갈 예정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그곳에 있다가 돌아온 것일까. 그는 몇 년 전 파리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그는 개선문에 있는 한 무명용사의 묘비에 1914~1918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를 여전히 슬프게 만들었다.
죽음은 더이상 변방에 있지 않았다. 그가 종종 침대에서 창가로 걸어오는 구간에서, 그가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떠다니고 있는 무엇이었다. 가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기를 꼬집는 사람처럼 영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기 위해 맥박을 느끼려고 했다. 보통 그는 자신의 맥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손목에서도, 가슴에서도, 목에서도. 더 귀를 기울일 때면 먼 곳에서 열리고 있는 장례식의 낮은 북소리 혹은 지하에 묻힌 누군가가 눅눅한 땅바닥을 두드리는 것 같은 둔중하고 느린 고동 소리가 들렸다.
물건들이 탈색되고 있었다. 심지어 바깥 간판에도 창백한 초록빛 기운만이 남아 있었다. 모든 것이 점점 흰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큰 눈송이가 인도 위에 내렸고 나뭇가지를 뒤덮었으며 주차된 자동차들을 흰 담요처럼 덮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량이라고는 없었고 그 누구도 다니지 않았으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모든 도시가 이처럼, 한 세기에 단 한 번 잠이 든 그 시간처럼,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전화벨도 울리지 않았고 켜 있는 텔레비전도, 다니는 자동차도 없었다.
차량이 움직이는 낮은 소리가 다시 들리자 그는 같은 음반을 틀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시나트라와 레이디데이. 그의 삶은 거의 끝나가는 노래였다. 그는 차가운 유리창에 자신의 얼굴을 밀착하고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거리는 검은 강물처럼 보였다. 줄지어 쌓인 눈은 강둑이 되어 있었다.
제프 다이어, 『그러나 아름다운(But Beautiful)』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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