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inkles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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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저녁에 걸을 만 해
하상도로를 걸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보문고(정청래가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함) 쪽으로 걷는데 달이 무지 크게 떠 있었다 모기가 신경쓰여 긴옷을 입고 나왔는데 강쪽이라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덥지 않게 느껴졌다 긴소매의 장점: 눈물 닦을 수 있음 센터 퇴소 이후로 위빳사나 1나 번도 안 해서 벌 받는듯; 오늘부터 자기 전에 홈빳사나 해야겠다 그전에 티비 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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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구단
아홉시 쯤 깼나? 어제는 손님방에서 잤다 방문 앞에 티비를 세워두고 <슈퍼배드2>를 보다 잠들었다 잠에서 깬 자리에서 그대로 누워 어제 보다 만 지점부터 <슈퍼배드2>를 다시 재생했다 <슈퍼배드2>에선 세 여자애들에게 엄마가 생긴다 아침부터 눈물을 닦고 일어나 대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었다 우붓 로스터리 출신 원두를 뜯어 커피도 내렸다 책을 좀 읽다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이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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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 생겼다
난 티비를 처음 가져본다 본가에서 티비는 안방에 있었고 엄마나 아빠의 전유물이었으므로… 난 여섯 살 때 아빠랑 채널 싸움하다가 아빠한테 리모컨으로 맞은 기억이 있다 장난으로 툭 친 게 아니라 정말로 분노가 치솟아서 패듯이 때린 한 대였기 때문에 삼십살이 되도록 기억하게 되었다 하지만 양육되는 동안 주로 나를 때린 것은 엄마였는데, 엄마는 때리러 오기 전이면 늘 본인이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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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삼일
성아가 어제 몬스테라를 주었다. 욜탱에서 키우던 몬스테라가 새끼를 낸 것을 떼어내 분갈이해서 준 것이다. 우리집에서 키우던 몬스테라는 내가 호주에 가 있는 사이 엄마가 죽여먹었는지 돌아와보니 사라져있었다. 빨래 걷으러 나가보니 후덥지근하고 뜨뜻한 게 몬스테라가 금방금방 자랄 날씨다. 성아에게 블루베리와 할라피뇨도 받아왔다. 이사 나온 날 엄마가 이런 카톡을 보냈었다. 너는 네 인프라와 네트워크로 너를 보호해. 나는 죽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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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이일
주인집 할매의 아들이 가스레인지를 고쳐주러 온다고 하여 일곱시 반에 기상했다. 아들은 검정색 피케이 티셔츠를 린넨인지 마인지 모를 가벼운 소재의 베이지 색 바지춤에 집어넣은 단정한 모양새로 왔다. 방송국에서 기술사를 하고 있다는 이답게 그가 손을 대자 가스레인지는 바로 스파크를 튀겼다. 임시직으로 노조위원장을 맡은 지 3개월 되었다는 아들에게 요즘엔 별일 없냐고 물으니 태평성대란다. 이 집에 이사온 지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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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기사님은
옛날옛적 유통 업무 맡았을 때 알게 된 아저씨다. 파주에서 만들어진 책을 부산 사무실까지 날라다 주는 물류 업체 이름이 날개였고 날개 기사님은 우리 지역을 관할해 책을 내리고 올려주시는 담당 기사님으로, 함자 조차 알지 못한 채 영원히 날개 기사님으로 저장되어 있다. 퇴사 이후 단 한 번도 연락한 적 없지만 가끔 날개 기사님이 프로필 사진을 바꿀 때마다 클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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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은 느낌 투성이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왔다. 아빠가 틀어둔 유튜브에선 이재명이 시종일관 호통을 치고 있어서 후덥지근한데도 방문을 꾹 닫게 된다. 이재명을 싫어하는 사람도 이재명을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 이재명이 소락배기 지르는 영상을 보며 산다… 나또한 이재명과 김혜경이 나오는 동상이몽을 보며 살고 있다 … . 너무 많은 느낌들이 왔다 가는 시절이다. 지난 주말에는 철원에 갔다. 서서 음악 듣다 자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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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
엊그제 초저녁 백델 책을 읽다가 살풋 잠이 들었는데, 완전히 정신이 감기기 전에 아빠가 집에 들어온 걸 봤다. 너무 졸려서 방문을 잠그지 않고 잤더니 바로 아빠에 대한 악몽을 꿨다. 아빠의 막냇동생인 국표삼촌(국민투표날에 태어나서 국표임)과 어떤 카페 같은 곳에 앉아 서로 악다구니를 써대며 니가 더 최현성(애비의 실명)이랑 닮았다고, 너는 완전히 느그형/느그아빠를 쏙 빼닮았다고 싸워대는 꿈이었다. 내가 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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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시작
장 서는 날이라 유성시장에서 토마토 한소쿠리(오천원)와 햇감자(사천원)를 좀 샀다. 한국에 오자마자 잊어버린 감각―지나가는 낯선 이에게 반사적으로 미소짓기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시장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바닥에 널린 마늘과 조갯살, 족발, 가지, 꽃화분 들을 구경하다가 엄마랑 늘 가던 가게에 가서 보리밥이랑 잔치국수, 항아리 막걸리를 마셨다. 밥 먹고 핫바 하나씩 사서 벤치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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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5일 차
1일차만에 애비게일과 갈등 재발. 대전통닭에서 닭 먹다 처울고 늘 그렇듯 엄마에게 화풀이. 늘 하던대로 엄마 슴가에 대못 박고 당근 부동산 순회. 그러나 이번엔 엄마가 아빠에게 추방령을 내리겠다고 하여 다시 헤헤거리며 엄마 옆구리에 붙음. 아 난 진짜 우리 엄마가 너무 웃기고 귀엽다…. 갈수록 더 엄마가 좋다. 왜냐면 내가 계속 변화하듯 우리 엄마도 인간적인 진화를 거듭하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