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어제는 마일스를 만났다. 툭하면 탱고 스텝으로 걷는 특이하고 요란한 남자애. 1999년에 태어났고 4남매 중 둘째란다. 얘는 가방 속에 늘 분필을 한가득 담아 다니며 마주치는 벽이며 바닥에 낙서하고 돌아다닌다. 어제도 어김없이 시청 앞 바닥에 낙서하다 직원한테 쫓기남… cctv로 지켜보다 내려왔다는 직원 아저씨는 느그때문에 클리닝 레이디가 빡세게 일해야 한다고 지우고 가라고 하셨다. 마일스는 엥? 이거 물로 지워지는데… 그럼 물 좀 떠다 주실래요?? <요지랄하고 있다…

이런 거 옆에서 볼 때마다 양인들의, 타인에 대한 터무니없는 선의기대가 굉장하다고 느껴짐… 사회적 신뢰도가 높아서일까? 아무튼 대체로 낯도 모르는 사람에 대해 무언가 요청/부탁하기를 꺼리지 않고, 그들도 대부분 요청을 들어주는 데에 인색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가 나한테도 즈그 브랜드 필름 출연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돈도 안 줄 거면서 🙂

하지만 어제 김민기 다큐 & 인터뷰 읽으며 이런 장사꾼 마인드 집어치우자고 새마음을 먹었으니, 나또한 기꺼운 마음으로 그의 돈안되는업사이클링의류브랜드필름에 찬조출연 해줘야지.

아름다운 사람들은 세상을 일찍들 뜬다. 악인들은 저마다 각자의 천수를 누리고 총알도 피해간다는데… 31 존재계가 진짜 있어서, 이곳을 떠난 맑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으로 잘 가셨기를.

보안사 취조실 끌려가 정신 끊길 때까지 맞으면서도, 자신이 있어서 저들이 죄를 짓게 되었다고, 때리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는 김민기 아저씨.. . 그에게서 사람이 이렇게도 살 수 있음을 배웠다.

왜 어떤 인간은 구제할 길 없는 씹쌔끼인데, 어떤 인간은 이렇게 한없이 고결할 수 있는가? 인간이 의지로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될 지 선택할 수 있는 걸까?

털보네 레코드바에서 일했을 때 이런 날이 있었다. 어떤 막대 같이 생긴 아저씨 하나가 영업 종료 직전에 와서, 한 곡만 듣고 금방 가겠다고 시네이드 오코너 노래 딱 하나를 신청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노래가 끝나자 맥주 한 병을 바로 비우고 그길로 나갔다. 그날은 시네이드 오코너가 죽은 날이었다.

나두 오늘은 꼭 그와 같이 김민기 판 틀어주는 술집에 가서 한동안 앉아있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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