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s a piece that was torn from the morning

브리즈번에 돌아온 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믿기지 않게도…

오늘은 점심 나절까지 늦잠을 잤다. 여행 동안 초저녁에 잠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생활 리듬이 몸에 뱄는데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뭐가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제 새벽까지 <비포 선라이즈>를 보다가 잠에 들었다. 갑자기 하이틴 영화가 땡겨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결국 또 올드무비의 덫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이또한 하이틴 영화라고 생각한다…)

에단 호크와 쥴리 델피의 젊음이 애름졌고 링클레이터 감독의 수다스러움이 좀 설익은 밥처럼 생각되었다. 역시 링클레이터 최고작은 <스쿨오브락>이라고 사료됩니다.

아무튼 다른 거 다 차치하고 기차타고 먼나라 이웃나라 구경을 떠날 수 있다는 것(그것도 환전 없이..) 그것이 유럽의 궁극적인 지점이다. 그러니 아무도 더이상 EU를 탈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트럼프의 재당선이 확실시 되어가는 와중에서도요…

어제 미국이라는 어떤 나라에서는요, 20살 먹은 어느 청년이 트럼프에게 총을 쐈답니다. 그런데 총알은 가까스로 이 할배의 귀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어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일이죠. 이 파시스트 백인우월주의자 할아버지는 잠시 주저 앉았다가 달려온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섰어요. 그리곤 군중을 향해 주먹을 치켜세웠지요. 지가 존나 쎈 것 처럼요. 하필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는 어느 유능한 사진 기자가 이때 할배의 영웅화를 찍었습니다. 그가 찍은 사진은 당연히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어요. 이 할배를 좋아하는 이도, 싫어하는 이도 모두 이 사진이 얼마나 아이코닉한지에 대해 떠들고 있습니다. 다들 이 사진을 도상학적으로 해부하고 사진의 정치적 기능에 대해 자기가 아는 모든 것들을 풀어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해석의 종착지는 트럼프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지요… 해석이라는 건 얼마나 힘 없고 허약한지요? 예측되는 참사를 막기는커녕, 바로 그 해석으로 인해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점에서요. 머 나중에 이 할배가 또다시 미국의 짱을 먹고 가까스로 3차대전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면, 그리하여 한국이라는 좃밥 국가가 아직 건재하게 된다면, 그땐 이 사진이 대학교 강의실에 단골로 출연하겠지요. 특히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 전공 수업 같은 데서요. 아마도 트럼프의 당선을 결정지었던 사진으로 기념되며 교수들은 사진의 테크니컬한 지점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을 테지요. 이때 동원되는 해석들은 얼마나 나약하며 후천적입니까? 진정한 해석이 가능하다면, 그 사진이 수행하고 있는 프로파간다를 진짜로 포착했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최선의 행동-해석에 따른 행동은 그냥 입닥치는 것입니다. 아무 의미도 재생산 될 수 없도록 말입니다…

기상 첫 커피를 끓여 마시고 정원 가꾸러 온 집주인 할배랑 짧은 스몰톡을 나눈 뒤 대충 세수하고 장바구니 챙겨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울월스를 향해 걸었다. 브리즈번의 상공이 늘 그러하듯 하늘은 청명하고 귓구녕에 꽂은 에어팟에선 내맘에 차는 노래들만 나왔다. 한 팩에 6천원 하는 느타리버섯(미칫나 이새끼들아 ㅠㅠ)과 양파 한 망, 오이, 식초, 배추, 가지, 고추를 샀다.

야채를 잔뜩 보따리에 이고 지고 집에 돌아와 그것들을 썰어 올리브 오일 한 바꾸 두르고 소금이랑 후추만 쳐서 퍼 먹었다. 송창식의 밤눈을 틀어두고… 마음이 너무 풍족해서 더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인생 만족도가 꽤 높길래 왜지? 하다가 그래 안 높아선 안 된다.. 왜냐면 통장 잔고를 꼬박꼬박 까먹고 있기만 하니까.. 입금이 없고 출금만 있으니까…^-^ 하는 그늘진 마음이 들었다.

지난주 금요일엔 배은채를 데리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 교복 입고 오는 게 룰이라기에 플리츠 스커트에 니삭스 신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그네들이 생각하는 교복은 코스튬 복장에 가까웠다. 헐벗은 여인들이 넥타이만 충실하게 매고 있었다. 몰랐던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 중 하나(이름: Mark)가 수요일에 미술관 가쟤서 그래.. 가마… 했다. 한국에 있는 나의 사촌동생 준서를 꼭 닮은 20살 아이다. 목요일에는 Miles의 25번째 생일파티가 열리는 네팔 음식점에 가야 한다. Miles의 친구 이름은 파커룰루다. 어떻게 이름이 룰루…? 존나 큐띠쁘디잔앙;

아무튼 Miles는 빈티지 의류를 리디자인해서 갖다 파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운영하는데, 친구들과 커머셜 필름을 찍는다고 나더러 출연해 달란다. 짜놓은 스토리라인을 보니 “패스트 패션에 반대합니다” 하는 내용이 있다. H&M, 유니클로, 자라를 돌며 300불을 써재낀 게 지지난주인데 카메라 앞에선 I don’t support fast fassion 이지랄을 떨어야 함. .. 참… 진실되게 사는 게 어렵네.


Comments

“There’s a piece that was torn from the morning”에 대한 2개의 응답

  1. 류쥰열이 되어선 안 돼…

    1. 아놔~ 류준열 이러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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