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도덕 풍경

쓰고 싶은 글이 많은데… 내게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일(≠job)이 된 지가 오래 되어서 모드 전환이 잘 안 된다. 어느 순간부터 삶이라는 것이 단순한 생명활동의 연장 쯤으로 여겨져 올해 하반기에는 일기도 거의 안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부터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주제가 두 개 정도 있다. 하나는 요즘 내가 태어나 거진 처음 느껴보는 다이어트 집착에 대한 것―탈코의 파도를 타고 도착했다고 생각한 육지가 실은 라퓨타였나?! 혹은 나 스스로 해보는 탈코 ‘훈련’의 성취도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지아 돌렌티노의 『트릭 미러』에 나온 문장 : “내가 진정 원하는 자유는 우리가 여성들을 사랑할 필요도 없고, 그들을 향한 우리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필요도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을 읽고 촉발된 어떤 감정으로 써내려 갈 회고이다. 임파워링과 자매애의 시대를 나름 힘껏 통과하고 ‘나서’의 이야기.

두 가지 주제이지만 결국 한 점으로 모인다. 나는 이 시점에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여러 책들을 읽어본 결과…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이라는 구상 자체가 존나게 올드하고 진부하고 이미 다들 해왔고(같은 이름의 학술대회 n회차 있을 듯…)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페미니즘 이후 따윈 처음부터 도래한 적 없는 게 아니야? 싶은 거다.

아까 헬스장에서 러닝 뛰면서 tv 보는데 화면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나왔다. 그들이 피난가는 모습, 그들에게 폭격이 떨어지는 모습, 그들의 의사가 환자를 살리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 네타냐후가 하마스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병원을 폭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는 자막도 읽었다. ebs로 채널을 돌렸더니 얼굴이 새카만 남인도 어부들이 배와 그물을 빌려 먼 바다에 나가 만새기를 잡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100마리는 잡아야 기름값과 배값을 대고 인건비를 건질 수 있다고 했는데 수확은 좋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조업이 금지되었다. 남인도 어부들은 생계에 대해 이야기 했고 물고기를 얼마나 잡아야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지, 자신의 배를 마련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상황은 좋지 않았고 카메라는 만새기 요리로 렌즈를 돌렸으며 나는 케이팝이 흐르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런닝 머신 위를 달렸다. 인간 주체는 항상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 낯선 자, 자신이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힘들에 의해 구성된 자다. 낮에 읽은 이글턴 책이 내리 꽂은 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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