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inkless diary

  • 끝내 죽는 인생

    끝내 죽는 인생

    “그가 아무리 많이 읽고, 생각을 할지라도 항상 그의 내부에는 어떤 텅 빈 공간이 남아있었으며, 바로 그 빈 공간을 통해 묘사되지도 않고 이야기될 수도 없는 세계가 불안한 바람에 의해 지나가고 있었다. 열일곱 살에 드바노프는 아직 그 어떠한 갑옷도 투구도, 즉 신에 대한 신앙이나 다른 정신적 안정을 위한 그 무엇도 가슴 위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

  • 언제까지 정신적 무지외반증으로 살텐가?

    오랜만에 한국 소설 읽다가 한국인이 쓴 책 읽으면 자1살 생각 밖에 안 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어떤 남자가 유성온천역사 안에 놓인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앉은 자리에는 이미 빈 캔이 세 캔 있었고 그 옆에 여섯개들이 카스 한 묶음이 포장지 뜯겨진 채 놓여있었다. 엊그제는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뒤에서 연거푸 스쿼트를 했다.…

  • 나아진다는 게 뭘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아니다, 실은 숨도 쉬고 밥도 먹고 전철도 타고 출근도 하고 말도 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고, 그 느낌의 하중이 너무 커서 발자국 떼기를 어렵게 만든다. 하루 중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 중 내 의지가 동력이 되어 작동되는 일은 잠 밖에 없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비 내리는 유성천 풍경을 보면서.. I can’t stand the rain을 듣고 있다… 이 다음엔 마일즈 데이비스 Blue in Green이 나올 것이다. 애플뮤직에 있는 비 오는 날 플레이리스트를 틀으면 레너드 코헨이나 쳇 베이커, 니나 시몬 같은 목소리들을 들려준다. 콕토 트윈스랑 요 라 텡고도 있다. 어제는 하루종일 자다가 저녁에 다빈이랑 사랑의 블랙홀 보면서 스위트 베르무트를 1/3 정도…

  • 보호

    거의 천년만에 수영을 했다. 성아가 아침에 유성까지 와줘서 같이 추목수영장엘 간 것이다. 강습용 수영복이 아닌 좀 널널한 바다수영복을 챙겨갔더니 물살을 가를 때마다 수영장의 차가운 물이 한움큼씩 가슴 아래로 들어가 내 몸을 그대로 만지고 지나갔다. 냉각수가 원전 열 식히듯… 몸이 데워질 틈 없이 식어만 갔다. 오십미터를 완주하고 다시 오십미터를 돌아 합해서 백미터를 쉬지 않고 수영해보려고 했는데…

  • 06/15/23

    후.. 씨발… 디비피아 인스타그램에서 듀선생 만화보다가 주짓수 버틀러 신간 홍보 만화(대충 우리의 취약성과 연루됨,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며 연대를 외치고 세계에 대한 내몰리는 자들의 ‘지분 있음’을 설파하는 내용) 보는데, 덧글창 들어갔다가 “지분이 있으니까 그 지분을 좀 포기하란 얘기죠” 이런 덧글 봄… ; 개빡쳐서 욕좀 하려고 블로그 켰다가 간신히 마음을 다스렸다. . .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아.묻.따 남을…

  • mellon collie and infinite sadness

    집중이 잘 안 되는 걸 보니 일기를 한 번 휘갈길 때가 됐나 보다. 어제 성아네 부부랑 완태 차를 타고 오전부터 공주엘 갔다. 막국수로 소문이 자자한 매향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평양냉면과 물막국수를 시킨 완태와 성아는 음식을 남겼고 나만 혼자서 비빔 막국수를 다 먹었다. 면이 독특했는데, 어떤 느낌인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무척… ‘세로’의 맛이 났다. 하지만 1만 2천골이라는…

  • Dust for life

    <코쿠리코 언덕에서> 봤다. 졸작이었다(근친 줬다뺐기 뭐하자는 거임…). 그래도 전후 경제부흥기를 맞은 국가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그 전후…라는 게 나의 조국의 전쟁이라는 데에 약간의 모골 송연 지점이 있는 거지만요…^^; 한창 오타쿠 소리 듣던 중딩 때 좀 제대로, 깊이 있는 오덕질을 할 것을, 그것마저 애매한 수준으로 해서 일본어도 못하고 그냥 만화보는 사람.. 됨; JLPT 후기…

  • 요시, 닷코시떼아게루요

    단어 외우다 나도 모르게 캡쳐한… 포옹이란 걸 해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아무도 안아주질 않아서 이몸은 빠르게 늙어가는 것만 같고 곧 물기가 다 말라 비틀어진 줄거리가 되어 누가 스치듯 툭 치기만 해도 바스스.. 가루 되어 흩날리게 될 것만 같다. .. 분명 사주에서는 나에게 언어 재능이라는 게 있다고 말해주었었는데, 왜 이다지도 일본어가 안 되는 것일까? 동아시아의…

  • 여름에 시장에 가면

    장사치들 사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생선 대가리 치는 아저씨를 괜히 한 번 더 쳐다보게 되고 목소리만으로도 내공이 느껴지는 미역장수의 돌미역 사려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수중에 현금이 만원 뿐인데 만원짜리 햇감자를 사는 바람에 앵두를 못 샀다. 어렸을 때 앞마당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오월이 되면 그 나무에서 앵두를 따다가 한소쿠리 실컷 먹었다. 무언가들을 사러 나온 중노년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