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놀이를 할 때마다 들고 다니는 긴 수건은 송월타월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언제부터 우리집에 있었던 건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이다. 그래도 아직 물기를 닦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고 스누피가 그려진 디자인도 마음에 들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이 수건에 쌓인 세월이 애착을 형성했기 때문에(십년 전 물건보다 어제 산 물건을 버리는 게 훨씬 쉽다), 새 비치타올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이 언제부턴가 내게 모래가 잘 묻지 않는 기능성 비치타올 광고를 노출시키기 시작했다. 점점 나는 좀더 커다랗고 좀더 특별한… 한국에선 잘 구할 수 없을 법한 호주산 비치타올을 하나 사서 돌아가는 게 꽤 근사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의 바닷가에서 (아직은 내게 없지만 분명 내 마음에 쏙 들) 바로 그 수건을 두르고 이런 물건은 어디서 났냐는 친구들에게 호주에서 사왔노라 말하며 뿌듯함을 느끼고 싶어졌다.
그렇게 이 쇼핑몰 저 쇼핑몰, 힙해 보이는 호주 스윔웨어 브랜드 계정들을 들락날락 거리며 실컷 비치타올을 구경하다가 트위터에 접속했더니, 호주 의료진들이 살아있는 보아뱀의 입에서 비치타올을 통째로 뽑아내는 영상이 타임라인에 떴다. 알고리즘이 작용한 것이다…….
의료진들은 보아뱀의 깊은 뱃속에서부터 수건을 끄집어 냈다. 한 명은 보아뱀의 입을 벌렸고, 한 명은 보아뱀의 몸뚱이를 연신 밀어 올리며 수건이 쉽게 역류하도록 마사지하였으며, 한 명은 기다랗고 얇은 집게로 수건을 끈질기게, 천천히 잡아 당겨 마침내 보아뱀의 입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얼싸안고 기뻐했다. 뽑아낸 수건엔 바다색 배경으로 여러 가지 해양 생물이 그려져 있었다.
수건이 필요했던 사람(들), 수건을 만든 사람(들), 수건을 산 사람(들), 수건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던 사람(들), 수건을 버린 사람(들)…… 보아뱀에게서 수건을 꺼낸 사람(들)마저도 수건이 필요하고, 수건을 사야 하고, 언젠간 수건을 버려야 할 것이다.
필요한 게 너무 많은 좆간으로 태어나 미안합니다. 죽을 때까지 지금 쓰는 비치타올을 쓰겠어요. 죽을 때도 같이 태워달라고 하겠어요. 배고픈 어느 보아뱀이 삼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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