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이 오랫동안 마지막 인사로 써온 말이라고 한다. 존나게 상투적인 말인데 병을 앓던 중 마주치니 이만큼 사무치는 말도 없다.
금요일부터 발병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려 3일을 내리 앓았다. 오늘은 그나마 회복되어서 다빈이 달고 도안동 저글커피바에 가서 커피도 마셨다. 자택 감금에서 풀려난 기념, 다른 사람들을 좀 만나고 싶어 사촌 언니도, 완태도, 지돌이도, 털보도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우리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사촌 언니는 제주도라서 완태는 이미 커피 마셔서 지돌이는 할머니댁이라서 털보는 전날 술을 대창 마셔서 우리들과의 커피타임에 오지 않았다.
결국 다빈이랑 단둘이 마주앉아 각자의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애가 혼자 중얼거리며 웃었다. 왜 웃으냐고 물어봤더니 뭔.. 라이트 노벨 제목?을 읊조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가 늙탱이라는 욕만 얻어먹었다. 썅…;
A형 독감의 굴레에서 벗어난 지 보름도 채 안 됐는데 또다시 어느 이름 모를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개고생을 했다. 목요일 새벽만 해도 일 마치고 성아를 집에 데려다 줄 만큼 건강하고 기운도 있었는데 금요일 아침에 눈 뜨자마자 속이 메스껍더니 구토를 했다. 전날 16시 경에 섭취한 김치비빔국수가 변기통에 쏟아졌다. 18시간 동안 소화되지 못하고 그저 내 위장에 보관..되기만 했던 김치 쪼가리들이 위액과 함께 역류해 식도가 불타는 듯 따가웠다. 그 첫 구토를 신호탄으로 오전 내내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다가 더 나올 것도 없어 위장이 좀 잔잔해지니 오한과 발열,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근육통이 육체를 지배했다. 한 발자국도 떼기 힘들었으나 너무나 <아픔>이라는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집앞 중앙내과에 찾아갔다. 500m도 안 되는 그 거리가 사하라 사막 횡단하는 것처럼 힘겹게 느껴졌다.
겨우 병원에 당도하여 할배 의사를 접견하니 그는 종이를 한 장 뜯어 내게 가능성 있는 질병을 목록을 주욱 써내려 갔다. 할배는 “십중팔구 위장염.”이라 말하며 종이 위에 8~9/10 이라는 분수를 적어 보였다. 그리고 그 밑에 노로 바이러스 로타 바이러스 담석증 A형 간염 맹장염 등등 온갖 질병 목록을 써줬다. 내가 철학관에 사주를 보러 온 건지 진찰을 받으러 온 건지… 이중에 내가 가진 병이 무엇인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봐도 의사영감은 허튼 소리만 계속하며 다음날 또 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더 물어볼 힘도 없어서 그냥 아구창 닫고 네네.. 하다 보니 링거까지 맞게 되었다. 이거 맞으면 좀 괜찮아지냐고 물어보니 많이 편해질 거라기에 한 시간을 팔뚝에 바늘 꽂고 누워있었건만(이 바늘 꽂을 때 너무 아파서 비명 좀 질렀다가 간호사한테 꼽먹다) 체감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지도 않았다. 사만원 내고 아미노산을 혈관에 흘려넣었을 뿐..
집에 오자마자 목구멍에 약 쑤셔넣고 누워있는데 오금이 떨리고 뼈가 시려서 꼭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두시간 씩 잠들었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다가 다음날이 왔고 이번에는 엄마를 대동하여 다시 중앙내과에 내원했다.
토요일 오전의 중앙내과는 이 나라의 인구고령화 문제를 그대로 포 떠 놓은 듯 늙은이들로 술렁거렸다. 로비에 가득 찬 노인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때론 접수원에게 자기 이름 석 자를 되풀이하며 언제 의사를 볼 수 있냐고 닦달을 부렸다. 접수대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는 조금 짜증이 난 듯했고 나의 대전문학관 시절이 겹쳐 보여 괴로웠다… 이 늙음, 이 연로함, 여기에 수반하는 온갖 귀찮고 무례한 어떤 것들이 너무나 지겨웠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은 쉽지만 늙어도 아프기는 싫은 법이다. 당장 나로서도 일찌감치 죽을 수 있다면야 두팔 벌려 환영이지만 이딴 고통을 수반해야 한다면 거절할 것이다.
정말이지 아픈 건 죽기보다 싫다.
이 복잡한 살과 핏덩어리, 신경 조직들이 정확하게 제 할일을 다 하며 통증을 일으키지 않고 어떠한 불편함을 감각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존나 기적처럼 느껴지는 3일이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중앙내과 의사에게 어제 처방 받은 약 효과 조또 없었으니 바이러스 검사나 해 달라 요청했으나 큰 병원 가서 해야 한다고? 무참히 씹혔다. 근데 간염일 수도 있다고? 검사는 좀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지금당장뒤질것같다고요할아버지…) 함. 검사가 여기서 된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대체 뭔 말인지 소통이 안돼서 “그래서 여기서 검사가 가능한 건가요” 재차 물었건만, 할배는 자기가 보고 있던 모니터를 내 쪽으로 돌리곤 갑자기 구글을 열어 검색창에 ‘A형 간염’을 쳐 넣었다. 그리곤 내게 검색 결과를 보여줌.. 어쩌라고..? ㅋㅋ.. 하; 말 안통하는 영감탱에게 희망을 잃고 너무 지쳐서 다시 아구창을 굳게 다물었다. 할배의 검색기록에는 어째서인지 ‘을지대 편입’이 남아 있었다…
간호사가 귓구녕에 체온계 넣었는데 38도가 나와서 해열주사를 맞게 되었다. 바늘에 찔리는 게 너무나 싫어서 뭉크의 절규 표정을 한 채 주사실로 끌려갔다. 하필 어제 내 팔뚝에 링거 바늘을 꽂은 간호사가 또 내 엉덩이에 바늘을 꽂으러 왔다. “오늘은 소리지르지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네.. 라고 하려고 했는데 엉덩이에 바늘침이 들어오는 좆같은 느낌이 급습하는 바람에 또다시 ㄴ..흐아악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엄마가 밖에서 “어휴 어른이 주사 맞는다고 소리를 질러 쪽팔리게 애도 아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나에게 뛰어들어와 면박을 퍼부었다. 바늘이 나가고 난 뒤에도 통증이 지속돼서 엉덩이에 솜 부여잡고 끙끙대고 있는데 엄마와 간호사 두 여자에게 쿠사리를 먹으니 너무 서러워 눈물이 솟구쳤다(REAL). 훌쩍 훌쩍 울며 주사실을 나왔다. 엄마는 창피하다며 엘베에 나를 집어넣었다. 약국은 자기가 들를테니 집으로 빨리 꺼지라구…
쓰라린 엉덩이를 붙잡고 울면서 집까지 걸었다. 찬바람이 눈물 지나간 볼따귀를 자극했다. 볼이 에이는 느낌을 받으며 29세 무직 한국 처녀는 그렇게 울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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