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슬퍼져… 라고 오늘 성아 외삼촌이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맞아요, 저두요 그랬다. 굵은 소금을 잔뜩 쳐서 석쇠로 앞뒤를 노릇노릇 구운 생선구이를 앞에 두고서…
한때는 눈만 내리면 용화사엘 갔다
어렸을 때 일이다
방문객이 별로 없는 그 절은
앞뜰에 눈이 쌓이면 아무도 밟지 않아 무지막지 새하얀 게
고라니 같은 어린애들이 뛰어놀기 그만이었다
그래서 눈 오는 날이면 친구 몇을 데리고
용화사 눈밭에 가서 몇 번이고 굴렀다
하루는 그렇게 놀다가 핸드폰을 열어 동영상을 찍었다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절이라
액정은 조그맣고 화질은 구지고 용량은 한도가 낮았다
그렇게 찍은 영상은 겨우 1분 남짓
애들이 서로에게 눈을 던지고
눈바닥을 온몸으로 굴러다니고
눈송이가 내려오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처든 채
사방팔방 열심히 뛰어다니는
그런 열두살들
몸이 너무 뜨거워 머리에서 김이 폴폴 나는
그런 열두살 여자애들이 찍힌 영상이었다
우리는 재미나게 눈놀이를 마치고
다같이 속셈학원엘 가서
원장 선생님께 영상을 보여드렸다
이름이 나미순이었던 그 선생님은 동영상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재생했다
참 이상하지, 자기가 나오는 영상도 아닌데 뭐가 저렇게 좋을까
마음이 어려서 이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눈가를 훔치면서 자기에게 꼭 이 동영상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그럴게요, 라고 대답했지만
곧 다른 사진과 영상을 찍을 메모리가 필요해져서
동영상은 미련없이 지워졌다
지금 너희는 모르겠지 하지만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거야 얼마나 눈물나게 아름다운 순간이 찍힌 건지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나미순 선생님 말처럼 그때 우리 중 자신이 귀한 시절을 지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눈 내리는 용화사 풍경과
한겨울에 땀 뻘뻘 나게 뛰어다녔던
볼이 새빨간 여자애들의 이미지는
이제 내 골통 속에만 살아있다
모든 시절에는 갸륵한 면이 있고
지나감이라는 세월의 속성은
시절에 들어있던 땟물을 빼고 깨끗이 세탁하여
본디보다 숭고히 기억되게 한다지만,
아무래도 각별히 청순하게 느껴지는 시절도 있는 것이어서,
가끔씩 이런 기억이 떠오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나한테 그런 일도 있었지,
그런 순간이 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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