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집에서 뭘 많이 먹었다.
마파두부 덮밥 해 먹고 수박 잘라놓은 걸 먹은 뒤 대천에서 싸들고 온 콜드브루를 마셨다. 저녁에는 얼려뒀던 탕종식빵을 녹여, 설탕 푼 계란우유물에 담군 뒤 버터에 구워 먹었다. 단 거 먹으니 맵고 짠 게 당겨서 진라면 작은 컵을 먹었다. 작은 컵이라 성에 차질 않아 하나 더 먹었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계란 장조림도 하나 꺼내서 아지 타마고마냥 얹어 먹었다. 그러고도 계속 허기가 졌다. 낮에 사온 복숭아 한 알로 입을 씻은 뒤에라야 양치할 수 있었다.
대천에 간 날, 어렸을 적 오래 다녔던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다.
장례식장은 부여에 있었다
마침 대천에서 대전 올라올 때 부여를 지나기에
잠깐 들르고 싶었지만
누군가의 장례식에 가기엔 너무 헐벗은 옷을 입고 있는 탓에
가지 못했다
낸시랭이 어깨에 고양이 인형을 얹고 어떤 연예인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더라…
그런 이야기를 하며 부여를 지나쳐 대전에 왔다
어제 그렇게 먹고 또 먹으면서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그리고 또 그리고』를 읽었다
작가가 고등학교 때부터 다닌 화실의 은사님 이야기였는데,
저런 사람과
저런 시간을 보내게 해놓고
저런 이별을 하게 만드는
인간살이란 존나게 지독한 거구나…
앞니로 진라면을 끊다가 그대로 우아아앙 울었다
좋은 만화를 읽으면 일정 부분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끔찍하다! 그건 어쩌면 경이롭다는 뜻이다
나는 8살부터 15살까지 이기숙 선생님의 음악학원에 다녔다
현관을 열면 곧장 하얀 그랜드 피아노가 서 있는 곳이었다
아무나 그 피아노의 건반 위에 손을 올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랜드 피아노로 바이엘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학원에는 연습용 업라이트 피아노가 아주 많았다
방방마다 하이드, 헨델, 베토벤 등 대단한 외국인들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나는 연습을 게을리 하는 흔한 한국 아이였다
하농이나 체르니처럼 연습용 교재는 한 번만 연주하고도 3개의 사과를 색칠했다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곡이 좋았다
동요집을 연주할 때마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방에 달린 창문으로 다른 아이들이 슬쩍 쳐다보고 가곤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인터넷으로 가요 악보를 다운 받아 프린트 해갔다
언젠가 이기숙 선생님에게 그런 가요 악보들을 레슨해달라고 내밀었는데
선생님은 하얗고 멋진 그랜드 피아노로
떠블에스 오공일의 <내 머리가 나빠서>를
성가대 스타일로 연주해주셨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분이셨다
결혼은 안 하셨다
종종 학원에 있는 전화로 본인의 부모님과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그런 전화를 끊고 나면 눈물을 흘리셨다
부모님이 남동생과 자신을 차별한다고 생각하셨다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의 개성은 이정도 뿐
그래도 나는 그 학원에서 아주 많은 일을 겪었다
<생각쟁이>나 <과학동아> 같은 어린이 잡지들도 거기서 처음 읽어보았고
셜록 홈즈라는 이름도 이기숙 음악학원의 책장에서 처음 배웠다
신발장에서 킥보드를 도난당하기도 했다
그 학원은 냉난방이 잘 되지 않아 겨울이 되면 아주 추웠다
손이 곱아서 건반을 잘 누르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선생님은 방방마다 난로를 놓아두셨는데
보현이가 난로 앞에 겨울 외투를 걸어뒀다가
잠바가 녹아 내렸던 게 기억난다
푸른 보랏빛에 안감은 진홍색이라 우리가 ‘죠스바’라고 불렀던 잠바였는데
어쩜 죠스바가 녹았다고 깔깔 웃었던 기억
학원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무렵,
선생님은 나를 대회에 내보냈다
부르크뮐러의 아라베스크를 어린이용으로 쉽게 편곡한 게 내 연주곡이었다
객석에서 감동한 사람은 우리 엄마밖에 없었지만 나는 금상을 받았다
그때 엄마와 나는 내가 피아니스트가 될 줄 알았다
그 대회는 기독교 단체가 주관하여 기독교 회관에서 열리는, 참가한 모든 어린이들에게 상을 뿌리는 대회였는데.
그래도 무대의 붉은 휘장 뒤편에 서 보는 일은
근사한 기억으로 남았지
선생님은 왜 죽었을까?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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