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는 법이 아니라 견디는 법

아침에 자고 있으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훤히 들린다. 누군가 집에 들어가는 소리, 나오는 소리, 쓰레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아이들이 엄마와 싸우는 소리 등 우리 동네 사람 살아가는 온갖 소리들이 써라운드로 들려서 내가 마치 길거리에 누워 자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좀만 더 자자, 잘 수 있는 만큼 자자 하고 알람 끄고 눈 감아봐도 10시 근처만 되면 잠이 아주 가버린다.

어제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 통을 가지고 들어오는데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건지 곧장, 일반음식물분리미준수 통보가 발급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발신번호가 일반 번호인데다 링크 주소가 허접한 걸로 미루어보아 스미싱인 게 확실한데 어떻게 이런 황금 타이밍을 맞춰 보내는 건지… 빅브라더 너냐;

커피 한 잔 내려서 습관적으로 어제 읽던 책을 마저 폈다가.. 7월이 다 가기 전에 호주에서 번 돈 세금 환급 신청이랑 연금 환급 신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책상에 앉았다. 네이버 블로거 분들의 하해와 같은 자비로 이케저케 따라해서 2시간 만에 모든 신청을 끝냈다. 귀차나서 호주 유심 안 빼고 있었는데 이게 신의 한 수 였던 거라~ 호주 번호 못 살렸으면 아무 인증도 못 했을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보다 폰번호가 귀중한 인증 수단이 되는 걸 보니 인간의 정체는 점점 더 휴대폰으로 이식되어가는 중인듯 하다.

맥루언 할아버지.. 보고 계세요?

그러고 있는데 택배 도착했다는 문자가 와서 부랴부랴 박스를 뜯으니 완태가 사준 청소기가 도착해 있었다. 먼지통 비우는 걸 오나전 싫어하는데(배은채에게 내 생일 선물로 청소기 먼지통 대신 비워주면 안 되냐고 간청했었음) 먼지 자동 비움 기능이 탑재된 청소기였다ㅠㅠ 존나 신세계임!!! 청소기 돌리고 충전타워에 꽂으면 모인 먼지가 자동으로 더스트백으로 이동해서 나중에 더스트백만 뜯어서 버리면 된다. 제품 정보 원하는 분들 덧글 주시고요?

택배를 뜯을 때마다 살림 밑천이란 곧 친구들이라는 게 실감된다

어제 목격한 장면들

머리를 예쁘게 땋은 어린애와 할머니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마주보고 까르르 웃으며 주차장 밖으로 둥실둥실 걸어나가는 것

초등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실내화 가방을 머리에 걸치고―이마가 어깨인 것처럼 가방끈을 머리에 걸고 무어라 장난말을 해대며 정답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

이런 걸 보는 게 너무 좋다

딱 내가 믿는 만큼의 세상을 보는 것이…

그렇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이 현실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것까지 받아들이미 해야겠지

그치만 아직 해탈하지 못했으므로 일단은 견디기부터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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