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이일

주인집 할매의 아들이 가스레인지를 고쳐주러 온다고 하여 일곱시 반에 기상했다. 아들은 검정색 피케이 티셔츠를 린넨인지 마인지 모를 가벼운 소재의 베이지 색 바지춤에 집어넣은 단정한 모양새로 왔다. 방송국에서 기술사를 하고 있다는 이답게 그가 손을 대자 가스레인지는 바로 스파크를 튀겼다. 임시직으로 노조위원장을 맡은 지 3개월 되었다는 아들에게 요즘엔 별일 없냐고 물으니 태평성대란다. 이 집에 이사온 지 일주일 된 나도 태평성대를 맞아 팬티바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일기를 쓴다.

어제 원두집에서 한나가 사준 원두로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셨다. 아직도 에어로프레스의 어느 구녁에 가루를 쏟아야 하는지 헛갈려 한나가 보내준 사용설명강의영상을 보고 따라했다. 커피에선 자몽향이 났다. 지금 우리집에는 커피땅거미와 나무사이로와 우붓커피로스터리와 케이빈커피와 원두집까지 총 5종의 원두가 한 봉씩 있다. 다 남에게서 얻은 것들이다. 부지런히 갈아먹어야 한다. 밖에 나갈 때도 담아다니고 싶은데 텀블러가 없네? 어디서 누가 텀블러 안 주려나? 차량용 컵홀더에 들어가면 좋고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다 담을 수 있게 스뎅이면 좋겠는데???

이따가는 한나랑 성아가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어제 만들어둔 참치 쌈장이랑 김만 내놔도 되겠지? 생각난 김에 밥 좀 앉히고 와야겠다.

수많은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게 당연한 나 자신이, 어떤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을지를 선택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저는 여기거든요.

임솔아가 악스트 인터뷰에서 내놓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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