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zve라고도 한다. 터키식 커피 냄비를 일컫는 말이다. 모카포트를 사고 싶었는데 커피팟을 사러 들어간 매장에 비알레띠 제품이 없어서 꿩 대신 닭의 심정으로 세일하던 이브릭을 집어들었다(3만원 조금 안 했다). 집에 와서 유튜브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공부했는데 3일 째 타먹는 지금까지도 맛이 시원찮다. 열원이 인덕션이라 불조절이 안 돼서 or 계량을 안 해서 or 그냥 이게 원래 터키식 커피 맛인데 내 입맛이 아니라서 <- 셋 중에 하나로 이유를 추론해볼 수 있다.
어제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를 걸어 퀸즐랜드 주립 도서관에 갔다. 새삼 생경한 이름이다. 퀸즐랜드며.. ‘주립’ 도서관이며.. 하는 단어들이 인생에 들어왔다는 걸 자각하면,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다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도서관은 무척 깨끗하고, 아름답고, 편리하고, 문화적이고, 무엇보다 넓어서, 콘센트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성인과 중고생의 눈치싸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각양각색의 책걸상과 소파가 있어서 다들 원하는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제 할일들을 했다. 열람실에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던 걸 보면…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시끄럽다는 경고 쪽지를 받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한밭도서관이 그리운 이유는… 읽을 수 없는 책들이 꽉꽉 들어찬 도서관은 모형책 갖다놓은 감성카페마냥 느껴지기 때문일 테다.
새벽에 무언가 돌파구..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무언가 몸을 밀어 넣어 통과시킬 구멍을 찾는 감각으로 브리즈번 시내에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곳을 찾아보었다.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 느닷없이 웬 시네마테크를 찾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관객이 얼마 들어 차지 않은 극장이, 뭔소리 하는지 알아 먹을 수도 없어 짜증을 유발하는 영화들이 그리웠던 것 같다. 이해되지 않으면서 즉각적으로 내면 속에 쳐들어와 안구에 습기 차게 만드는 이미지들이 움직이는 걸 보는 행위가 하고 싶었다. 센텀에서 국지니 다닐 시절에도 급식표 찾아 보는 심정으로 영화의전당 상영시간표를 날마다 확인했었다.
부끄럽지만 살아가려면 그런 게 필요한 것 같다….
매슬로우의 욕구 계층 이론처럼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피라미드를 그려보면 가장 아래에 Korea Food가 있을 것이고 그 위를 차츰 책이나 음악, 아트필름 같은 것들이 채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삶을 유지하려면(제정신이든 아니든) 김치와 예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치가 만인이 인정해야 하는 인생의 코어 같은 것이라 주장하는 데에는 아무런 무람이 없는데(진심 지당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가려면 아무튼지간에 예술이 꼭 필요하다고 내뱉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면 너무 웃기게 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철모르는 고상한 1세계 백인 남자 같다고 속으로 비웃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말은 말해져야 마땅하다. 살아가기를 직면하려면 생활의 반경에 도서관 박물관 극장 미술관 등이 필요하다.
도서관에서 한 일이라곤 틴더 돌리기 정도가 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시설은 삶의 필수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로 틴더를 자주 본다. 슈퍼마켓 할인 전단 넘기듯 사람들을 구경하고 밀어버린다. 아무리 왼쪽으로 밀어 치워버려도 새 프로필이 무한 공급되는 그들이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중요) 시네마테크를 부르짖듯이 적어놨지만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제는 일요일이었고, 이 사람들은 17시면 모든 시설의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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